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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야마 담화, 고노 담화] 일본기자클럽 대담 /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 고노 요헤이 전 내각관방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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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일갈등타파연대 작성일 21-03-01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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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9일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와 고노 요헤이 전 내각관방장관은 일본기자클럽에서 일본 현직 총리로서는 최초로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를 한 무라야마 담화[전후 50주년의 종전기념일을 맞아(戦後50周年の終戦記念日にあたって) 1995.8.15.] 및 고노 담화[위안부 관계 조사결과 발표에 관한 고노 내각관방장관 담화(慰安婦関係調査結果発表に関する河野内閣官房長官談話)’1993.8.4.]와 관련, 대담을 나눴다. 다음은 주요내용이다.

■ 사회자 :
‘침략’이라는 말을 ‘침략 행위’로 해야 한다든지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저항도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결착을 보게 된 겁니까?

■ 무라야마 도미이치 :
침략 행위나 침략은 어느 나라라도 과거에 있었지 않느냐고.. 그러니까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는 등 다양한 의견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 일본 군대가 중국을 침략했으니.. 역사적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겁니다. 그리고 한국은 36년 간 식민지 지배를 한 것이니까.. 이런 역사적인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역사적 사실은 솔직히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사용한 말이기 때문에 특별히 반론은 없었습니다.

■ 사회자 :
그리고 또 하나.. (무라야마)담화를 잘 읽어 보면 매우 의미 깊은 말이 있는데, ‘과거 머지않은 시기에 국책을 잘못했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잘못된 국책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굳이 그런 표현을 한 것에 의미가 있는지.. 혹은 무라야마 씨가 염두에 둔 뭔가가 있었는지.. 어떻습니까?


■ 무라야마 도미이치 :
다양한 견해나 표현 방법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예를 들면 일본이 군대 강화를 도모해 러시아 전쟁을 시작해 전쟁에서 승리하고.. 일본의 생명선이라고 해서 만주를 확보하고 굳이 위장 독립국을 만들어 만주를 일본의 지배하에 두었습니다. 중국을 침략한 것에 대해 그 이외의 표현 방법은 없다고 생각해 논의한 결과 그렇게 정한 것입니다.

■ 사회자 :
이 담화의 마지막 부분에 ‘독선적 내셔녈리즘을 배제’ ‘국제 협력을 촉진한다’는 워딩이 있습니다.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20년 전의 말이지만.. 현재 상황에 대해 뭔가 통용되는 말인 것 같습니다. 독선적 내셔널리즘, 국제 공조를 위한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말이 요즘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무라야마 도미이치 :
‘독선적 내셔널리즘’이라는 것은 부정한다고 해도,. 어느 나라나 내셔널리즘은 있으니까 그러나 좋은 방향으로 전개해 가는 것은 괜찮겠지만,, 자신의 나라만이 특별히 가지고 있는 좋은 점이라고 굳이 과장해서 세계로 확산하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니 그런 것에 집착하면 안 됩니다. 잘못된 판단을 하게 하는 근원이 된다는 의미에서 ‘배제’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니 틀리지 않았다고 봅니다.

■ 사회자 :
그럼 다음으로 ‘고노 담화’로 옮겨 가겠습니다.. 무라야마 씨께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무라야마 도미이치 :
고노 담화는.. 한국과 일본이 전후 기본조약을 체결하고 국교를 회복해 왔지만 지금까지 역사 문제에 대해 한국에 구체적으로 사실을 밝히고 사과를 한 전례는 없었습니다. ‘고노 담화’가 최초이며,, 매우 용기 있는 담화로 경의를 표합니다..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고노 담화는 사실 조사도 하고 다른 자료도 검토해 최종적으로 한국 정부가 양해한 형태로 발표했습니다.

고노 담화가 나와서.. 어떻게 실천을 해 나갈지 하는 단계 중에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가장 큰 견해 차이는 역시 한국 쪽에서는.. 위안부 문제는 어디까지나 범죄이기 때문에 범죄자도 명확히 하고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용서도 인정도 할 수 없다는 강경한 의견이고 일본은 이미 기본조약으로 모두 해결한 문제니까 동일한 배상을 두 번 할 수 없다고 하니 뭔가 좋은 방법이 없는지 여러 가지 검토한 결과 여성 기금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국민 모금으로 보상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 문제를 비교적 원활하게 해결해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최종적인 결정을 해야 되니까.. 물론 문제는 남아 있었지만 고노 담화가 나옴으로써 일본 정부도 노력을 하고 한국 측과 대화도 할 거라는 형태로 진전시켜 가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2차 아베 내각이 되자 아베 씨가 고노 담화를 계승할 수 없다.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죠. 게다가 국회 안에서도 끝난 이야기를 다시 문제 삼아 그 담화에는 확실한 증거가 없지 않냐고 다시 문제를 제기해 한국이 화가 난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수습되어 가고 있던 문제를 그런 발언을 함으로써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형태로 위안부 문제를 다시 재연해 국제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 방법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좋은 일이라면 괜찮아요. 하지만 잘못한 일을 일부러 재차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엇 때문에 끝난 이야기에 새삼 문제 제기를 하느냐는 거죠..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위안부는 명백하게 일본 군대가 작전상 필요해서 만든 겁니다.

작전상 왜 필요하냐 하면... 강간 등을 저질러 치안이 나빠지는 문제도 있을 것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질병이 만연해 일본의 전력(戰力)에 영향을 줄 수도 있고, 그리고 여러 가지 면에서 그런 일을 통해 스파이 행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그러니까 위안부는 군이 작전상 필요하니 어떻게든 만들라고 해서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러나 군이 직접 경영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업자에게 위탁해 만든 것은 틀림없습니다.

위안부를 어떤 방법으로 모았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조사도 하고 있지만,, 그것은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이 조사에 위안부 여러분도 16명 정도 불러 다양한 의견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그건 의견을 들었을 뿐이지 증거 확보 조사를 한 건 아니라고 한들 증거 확보 조사를 할 방법이 없으니 그런 것을 따지고 문제 삼을 필요가 없는 겁니다. 일어난 사실, 한 사실은 틀림없으니 역시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에 대한 보상도 하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그러한 노력을 앞으로도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과제가 남아 있는 참에 그 담화는 확실한 증거 조사도 하지 않았으니 계승할 필요가 없고 재조사를 하겠다며 새삼 문제를 삼고 또 유엔 인권위원회에서도 문제가 되어 다시 논의를 되풀이하고,. 다양한 민간 발언도 있어서 지금은 일본 국민 전체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생각에 의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기본적인 인권에 대한 불신감을 높이는 이런 결과로 끝난 것을 정말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고노 담화를 한일 화해의 기회를 만든 하나의 역사적 문서로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점은 국민들이 인정하고 잘한 것은 잘했다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는 판단을 확실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회자 :
지금 말씀하신 담화의 전체상은 의외로 별로 언급되지 않고 한일 문제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 담화에 대해 논의되는 하나의 쟁점으로 그 위안부들에 대해 일본군이나 일본 정부가 얼마나 강제성이 있었는지가 하나의 포인트입니다. 소위 광의의 강제성, 협의의 강제성 등의 논의가 있었지만 그런 것을 제외하고 보고면 이 담화 속에서 ‘강제적으로..’이라는 논의, 강제성에 대한 명확한 언급은 없습니다.

담화문에는 ‘대체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라는 논의가 있습니다. 강제성에 대해 그다지 명확하게 적혀 있지 않은데.. 고노 씨가 20년 전 8월4일 기자 회견에서 질문을 받고 그 자리에서 강제성을 부정하지도 않았으니 일본 정부가 강제성을 인정한 것 아니냐는 논의가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 제가 좀 공부를 했는데.. 한일 간에는 명확한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인도네시아에 있던 네덜란드인 여성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관점에서 보면 강제성 이상의 일이 있었다는 거죠 저 개인은 그렇게 해석했습니다만.. 이것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 고노 요헤이 :
이 담화는 조금 전 말씀드렸듯이 미야자와 총리가 한국에 갔을 때 한국이 요청을 해서 소위 종군 위안부에 대해 조사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돌아와.. 조사를 명령해 담화가 나왔다는 흐름에서 고노 담화가 한일 관계.. 한국의 종군 위안부를 매우 중시해 작성한 것으로 보는 분이 많습니다.

사실 담화 안에도 소위 종군 위안부라고 불리는 사람 중에 당시 한반도에 있던 여성이 많았다는 것이 적혀 있고 한국과의 관계가 매우 많았다는 것을 쓰면서.. 동시에 조금 전 나온 ‘대체로 본인의 의사에 반해 모집이 이루어지고, 관리가 이루어졌다’고 쓰여 있습니다. 본인이 의사에 반해 모으고 관리되었다.. 관리라는 말이 적당한지 모르겠지만.. 관리를 당했다는 것부터가.. 광의의 강제성이 인정되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조금 전 말씀드렸듯이 그런 문장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팔을 끌고 데려오거나 멱살을 잡고 끌어냈다는 것이 문장으로 남아 있지는 않으니 그것을 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본인의 의사에 반해 모집한 겁니다.. 모집 방법은 감언으로.. 달콤한 이야기로 모으거나 거짓말을 하고 모집한 거죠.. 다른 곳에 일자리가 있으니 가지 않겠냐고 하고 모은 경우도 있을 겁니다. 혹은 최근 총리도 발언을 했지만.. 인신매매로 모집한 경우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대체로 본인의 의사에 반해 모집 당했고.. 게다가.. 여기가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모집된 결과 지극히 강제적으로 일을 시켰고.. 싫다고 해서 돌아갈 수도 없었고 싫어도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매우 강제적으로 일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또 군이 이동하면 이동 때마다 군이 준비한 차량에 실려 이동했습니다. 완전하게 군의 관리 하에 이동을 했다는 겁니다. 그 부분을 보면 명백하게 강제성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집한 부분에 대해서는 소위 광의의 강제성이라는 의미로는 그러니까 본인의 의사에 반해 모집된 사례가 매우 많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강제 모집’, ‘강제성이 있었다’, ‘강제 연행’이라는 식으로 담화에 쓰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거죠. 한국의 종군 위안부에 대해서는 적당하지 않다고 보고 ‘대체로 본인의 의사에 반해’라고 썼습니다. 그럼 강제적인.. 소위 강제연행은 없었냐 하면 인도네시아의 네덜란드 여성 사례를 보면 인도네시아에서 모집한 여성을 군대가 가서 강제적으로.. 명백히 강제적으로 끌고 가서 위안부로 일을 하게 한 사례는 네덜란드의 조사로 밝혀졌고 네덜란드 정부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것에 대해 시설은 바로 없앴고 재판으로 책임자도 처분되었으니 이미 끝난 일이라고 말하는 분도 있지만 그런 것으로 사실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죠.. 사실이 있었던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강제 연행도 있었다’고 해도 된다고 봅니다.

■ 사회자 :
무라야마 씨! 고노 담화를 받아 무라야마 정권에서 기금을 만들었죠? 여성 기금을.. 그러나 결과적으로.. 최종적인 이해를 얻지 못하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 두 정권에 걸쳐 그런 성명을 내고 그것을 구체화해 기금을 만들고 보상을 한 것입니다. 국가가 얼마나 책임을 지고 있는지 여부와는 별도로 이런 경우는 없었습니다. 일본이 전후 보상으로.. 패전 직후에 몇 가지 일은 했지만 냉전 붕괴 후 아마 다른 경우에는 보상을 절대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최종적으로 한국인들의 이해를 얻지 못한 것인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무라야마 도미이치 :
작년에 한국을 방문했는데 위안부 문제가 그 정도로 국민적인 과제가 되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중학생까지 누구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어째서 일본이라는 국가는 그렇게 심한 짓을 하고 뒷수습도 하지 않느냐는 강한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위안부 문제가 하나의 국민적인 큰 과제가 되어 있다고 저는 인식했습니다.

애당초 위안부 문제는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1991년에 그리고 기자회견을 열어 다양한 문제를 들춰내고 이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그때부터 위안부 문제가 큰 문제가 된 겁니다. 그리고 2011년에 109명의 할머니들이 다같이 헌법재판소에 고발을 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위안부 문제의 결말을 내지 못한 것이 한국 정부 책임이라는 것을 확실히 제시합니다. 헌법재판소에서 그렇게까지 판단하면 한국 정부도 더 이상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해결하라고 일본에 강력히 요구하고,. 그래서 일이 재연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고노 담화가 나오고 나서 국민.. 여성기금을 만들고.. 여러 가지 오해가 있었습니다. 오해가 있었다는 것은 여성기금은.. 국가가 당연히 보상해야 하는 것이지만 기본조약 체결로 배상 문제는 전부 해결되었다는 전제로 다시 유사한 배상을 하는 것은 무리라고 하니까 국가가 하지 못한다면 국민이 대신 모금을 해 보상을 한다는 것으로 기금이 발족된 겁니다.

그런데 그게 어떤 신문의 보도로 처음에 희망을 모아 위로금을 낸다는 식으로 보도가 되어 위로금 명목의 동정으로 주는 돈은 받지 않겠다고 거부를 당한 겁니다. 처음부터 그런 인상이 있으니 아무리 속죄한다고 해도 ‘속죄’라는 말이 상대에게는 통하지 않는 겁니다. 그런 오해가 있어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정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좋은 말이 있습니다 ‘매듭은 묶은 사람이 풀어야 된다.’ 그래서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저지른 일 아니냐.. 그러니 일본이 확실히 끝맺음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역시 ‘일본은 정상 회담을 열고 어떻게든 해결을 원한다.. 해결하고 싶다.. 지금까지의 경과도 있으니까 충분히 검토한 후에 어떻게든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일본 측에서 하면 한국은 그런 일은 절대 반대하지 않습니다.. ‘괜찮다, 부탁한다’라고 할 겁니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나머지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만 해결하면 잘될 거라 생각합니다.

■ 고노 요헤이 :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역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과한다, 하지 않는다.. 좀 전에 무라야마 씨가 여러 말씀을 하셨지만 어쨌든 우선은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실을..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누가 봐도 의심할 여지없이 있었던 그런 일을 없었던 것처럼..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뭔가 하나 세세한 것들을 가지고 와서 그러니까 없었지 않냐고 그것을 부정하거나 다른 데서도 하고 있으니 괜찮지 않냐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이런 일이 얼마나 일본과 일본인의 명예를 손상시키는지 진심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 점에 관해서 저는 매우 화가 납니다. 왜 그런 일을 하는가!! 우리는 다음 세대에 일본인의 긍지를 계승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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