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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출신 일본군 등 동일하게 희생된 일본인 중 일부.. 전승국? 가짜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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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일갈등타파연대 작성일 21-06-13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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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자료에 의하면,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조선인 출신 일본해군의 사망지로 팔라우섬, 메레욘섬, 쿠에제린섬 등 남양군도(南洋群島, South Sea Islands) 지역이 다수 등장한다.
미국령인 괌을 제외한 이 지역(마리아나 제도, 팔라우 제도, 캐롤라인 제도, 마셜 제도)의 섬들은 독일 제국의 식민지였다가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인 1919년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일본의 위임통치령(국제연맹이 통치를 위탁한 지역)이 되었다.
마리아나 제도의 남쪽에 위치한 메레욘섬은 전쟁 중 사이판 등 마리아나 제도에 대한 미군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한 일본군 거점의 하나로 육·해군 장병 6,500여명이 주둔했다.
1944년 7월 사이판이 미군에 함락되었다. 일본 본토와 메레욘섬 사이에 위치한 사이판의 상실은 보급품 수송의 중단을 의미했다. 미군은 ‘징검다리 작전’으로 메레욘섬을 '무시'하고 일본 본토로 진군했고, 일본해군이 제해권을 상실함에 따라 메레욘섬의 일본군은 태평양에 고립되었다.
섬에는 원래 바나나와 망고 나무 등이 자생하고 있었지만 그나마 미군의 공습에 의해 대부분은 불태워졌다. 당초 규정에 따라 지급되던 하루 쌀 720그램이 8월 하순에는 290그램, 그리고 9월 하순에는 결국 100그램까지 감소되어 메레욘섬은 그야말로 ‘기아의 섬’이 되었다.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두 달 여를 버텨 결국 살아서 일본에 돌아갈 수 있었던 장병은 1,626명에 불과했다. 메레욘섬은 "싸우지 않고 굶주림과 병으로 옥쇄한 비극의 섬'으로 역사에 새겨지게 된 것이다.
메레욘섬에 주둔했던 조선인 출신 일본군 사망자는 4,900여명의 일본군 사망자 중의 일부였다. 전쟁 말기 원폭을 비롯하여 전시기 도처에서 폭격이나 사고로 죽거나 다치거나 굶어죽은 8만여명의 조선인 출신 일본군, 군무원, 노무자, 위안부 또한 동일하게 희생된 일본인 중의 일부였다.
그럼에도, 혹자는 한국이 일본을 대함에 있어 전시기에서 '일본군 위안부'라는 특정 부분만을 왜곡되게 드러내고 오늘날의 ‘세계여성인권’으로 연결시켜 마치 전승국의 지위를 행사하려는 듯한 오만한 태도를 보인다.
반면에 또 다른 혹자는 겉으로는 한일우호를 내세우면서도 ‘전시 동원체제’ 아래 여러 나라/지역에 소재했던 다양한 국적의 軍위안부 영업형태(직영, 관리, 민간) 앞에서 ‘가짜 위안부’를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Q. 이미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군의 관여'를 인정하고 여러 나라에 사죄와 보상을 실시했고, 국제법상 재론하지 않기로 거듭 합의한 사항인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사진1) 마셜 제도에서 미군에 의해 촬영된 일본군 포로
미군의 보급품 차단으로 인한 일본군의 기아 상태를 잘 보여준다. 
(사진2) 기증자=정명출 피해자=정명출, 진해 해군지원병훈련소 수료기념 사진  
이 사진은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소장 자료[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로서 노무현 정부는 이 사진을 일제하 강제동원 증빙자료로 피해자 인정, 해당자는 보상금을 수령했다.
(사진3) 기아의 섬 "메레욘섬에서 살아남아 벳푸항에 도착한 일본군들 1945.9.26 

[자료 출처] 국가기록원, 주간문춘, 위키, 일제강제동원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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